다정하지만 이질적인
상태바
다정하지만 이질적인
  • 정관소식
  • 승인 2022.11.30 16:28
  • 조회수 3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바람이 살랑이던 지난날이 아득해졌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앞만 보고 달리는 시간은 그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바야흐로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시기입니다.

  정처 없이 도시 한복판을 걸어봅니다. 북적북적한 인파 사이를 누비며 세상을 구경합니다. 한파에 옷을 겹겹이 싸맨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오는군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빠른 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합니다. 전단과 물티슈를 나눠주는 저분은 오늘 이 일이 처음인가 봅니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손이 애처롭습니다. 고층빌딩 전광판에는 북한이 연이은 도발을 감행했다는 속보가 자리합니다. 속보에도 무감각한 인파, 오늘 중 그가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빌딩 숲속 유난히도 올겨울 찾아보기 힘든 붕어빵 노점이 눈에 띕니다. 내심 꾸깃꾸깃한 지폐를 주머니 속에서 꺼내며 덤을 주고받는 모습을 그려보지만, 고물가는 붕어빵의 낭만마저 뺏어버렸습니다. 주뼛주뼛 천 원을 꺼내는 모습이 옹졸해 보이지 않을까, 애꿎은 천원은 빛을 보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계좌번호로 돈을 송금합니다. 우수리가 없는 걸 보니 앞서 지나간 수많은 사람이 같은 길을 걸었나 봅니다. 호호 입김을 불며 분주하게 장사를 이어가는 노점 앞에는 백화점을 들어서기 위한 외제차들이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회색빛 건물 사이 대로변에 앉아 투쟁하는 자들의 모습 역시 보입니다. 고래고래 투쟁을 외치며 단합하는 이들에게 혹한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존권을 외치며 열기를 돋우는 이들의 모습이 창가 너머 옹기종기 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여유를 만끽하는 자들과 대비됩니다. 성탄절을 반기는 트리가 그들에게 냉소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아! 찬란하고 아름다운 2022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토록 눈부시게 빛나는 시대의 일원이 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세계인의 축제로 하나 되어 헹가래를 외치는 이 순간에도 침공의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상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다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다시 정처 없이 도시를 헤맵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시간은 방랑자에게 유난히 따뜻한 겨울을 선사합니다. 때때로 답할 수 없는 그 어떠한 실체가 없는 무심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방랑자에게 이러한 질문은 사치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정하지만, 이질적인 세상의 주범은 호쾌하게 웃으며 떳떳하게 외칩니다. ‘아아! 아름답고 찬란한 세상이여! 이 시대의 일원이 되어 행복합니다.’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거울에 비친 다정하지만, 이질적인 방랑자의 모습을 지워봅니다. 다정하지도 이질적이지도 않은 세상을 그려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