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
상태바
신조어
  • 정관소식
  • 승인 2022.05.03 11:51
  • 조회수 38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조어 남발은 우리말을 왜곡시키는 지름길=

  요즈음 뉴스시간에 가장 자주 듣는 용어가‘검수완박’과‘부모(아빠)찬스’일 것이다. ‘검수완박’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줄임말이고, ‘부모(아빠)찬스’는 ‘부모(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무엇을 이룰 기회를 얻음’을 이르는 말이다. 둘 다 신조어(新造語) 또는 신어(新語)이다. 우리국어사전에는 신조어와 신어를 ‘새로 생긴 말 또는 새로 귀화한 외래어’로 정의하고 있다. 기존의 언어를 새롭게 조합하거나 현존하는 어휘의 일부를 잘라 내어 형태를 변화시켜 만드는 경우도 신조어에 포함된다. 신조어는 사용되는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창문이라고 한다. 그 시대의 관심사나 사회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의 대표적 신조어는‘사바사바’라 할 수 있다. 일본말로‘사바(さば)’는 고등어인데, 고등어가 귀했던 당시 고등어 두 마리를 일본인 순사에게 뇌물로 주면(사바사바) 일이 잘 해결됐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1950년대 대표적 신조어는 ‘개판 오 분 전’이라 할 수 있다.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황을 말하는 이 말은 언뜻 개(犬)들이 난장판을 이룬 상태를 연상시키지만,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료급식을 할 때 솥뚜껑을 열기 5분 전에‘개판(開版)!’하고 피란민들에게 알려 줄을 세웠는데, 이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난장판을 이뤄 생겨난 말이다.

  1961년 5·16혁명 후에는‘정치교수’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교수 본연의 일보다 정치적 활동에 치중하는 교수를 빗대어 나온 말이다. 또 1970년대 전후에는 ‘뺑뺑이 세대’라는 말도 유행했다. 1968년 중학교 입시를 폐지하면서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학교를 정하는 추첨을 할 때 돌린 팔각형 추첨기계를 빗대어 생성된 말이다. 지금도 자주 쓰이는 ‘폭탄주’는 1970년대 미국의 항구 노동자들이 빨리 취하기 위하여 마시던 음주문화에서 따온 말이며, 우리나라에선 보통 ‘소맥(소주+맥주)’으로 통하기도 한다. 1980년대에는‘땡전뉴스’라는 말이 성행했는데, 당시 뉴스가 시각을 알리는‘땡!’소리와 함께 ‘전두환 정부’에 대한 선전을 가장 먼저 송출하던 것에 빗대어 만들어진 말이다. 88서울올림픽 개최 확정 이후에 등장한 신조어로는 치맛바람(여자의 극성스러운 활동을 비유), 복부인(부동산 투기로 큰 이익을 꾀하는 가정부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 등이 있다.

  1990년대 전후 삐삐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223(둘이서), 486(사랑해), 982(굿바이), 0242(연인사이), 7942(친구사이), 8282(빨리빨리) 등 숫자를 줄여 암호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에는 캥거루족(졸업 후 자립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취업하지 않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기대는 젊은이들의 총칭), 자라족(부모의 단단한 보호에서 나오지 않는 젊은이), 빨대족(자립하지 않고 부모의 노후 자금(연금)을 빨아 먹는다는 젊은이), 백수·백조(외환위기로 인한 실업난으로 졸지에 직장을 잃은 남성·여성), 장노(장기간 노는 사람, 오랜 취업준비에 지쳐 취업을 포기하기 시작한 구직자) 등의 신조어가 생겨 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금수저(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흙수저(금수저의 반대 말), 헬조선(지옥처럼 혹독한 조선사회),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 등이 유행했다. 더불어 주식투자가 일반화되면서 주린이(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 주식+어린이=주린이), 개미(개인 투자자), 동학개미(국내주식을 사들이는 개인투자자), 서학개미(해외 주식을 사들이는 개인투자자), 슈퍼개미(자산 규모가 큰 개인 투자자) 등이 생겨났다.

  이와 같이 신조어가 급격히 늘어나는 이유로는 먼저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 보급을 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인터넷 강국이다. 따라서 자연히 빠르고 간편한 것을 선호하는 취향이 생겨 신조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또한 한 단어 또는 문장이 다소 길면 어떻게든 줄여 보려는 욕구 때문이기도 하고, 진부한 표현보다는 참신한 표현을 선호하는 본능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조어는 처음에는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그 시대 사람들과 동질감을 지니면서 소통하기 위한 말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생겨 날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사회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지만 우리말의 문법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면서까지 신조어나 줄임말을 사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특히 그 유래나 의미가 소수계층에만 통용되는 것이라면 참다운 언어라고 할 수 없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그런 만큼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런데도 잘 다듬기는커녕 손상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제강점기‘조선말 큰 사전’편찬의 주역이었던 이극로 박사의‘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라는 명언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하종덕(전 부산광역시 서구 부구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