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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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중 전화
  • 정관소식
  • 승인 2021.04.2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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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미학-

 

혹여나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떠나지 않을까 불안한 적이 없지 않아 있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다는 필연적인 이야기를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었다. 어쩌면 너를 놓치게 된다면 나의 소중한 추억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다시는 좋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머물러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필자에게는 ‘애착 담요’가 있었다. 월드컵 2002년에서 한국의 건승을 기원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된 담요는 정열의 붉은 색과 심술궂은 도깨비가 그려진 제품으로 어린아이가 다소 무서워할 수 있는 디자인이었으나 보들보들한 촉감이 너무나 좋아 항상 꼬옥 안고 자곤 했었다. 시간이 흘러, 담요는 빛이 바랬고 너덜너덜해져 이별의 시간을 암시했지만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한동안 아무도 내 담요에 손댈 수 없도록 꼭꼭 숨겨뒀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다양한 만남이 줄어들면서, 가뜩이나 좁았던 인간관계가 축소되며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행위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든다. 정말 소중했던 사람들 역시 대면해서 만나지 못하니 다소 멀어졌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가깝고 멀다의 기준을 나누는 것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으나 마음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으며 또한 그 주관성마저 한결같지 않고 시시각각 바뀌어 ‘그 사람을 정말 내가 애틋하게 생각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계에 있어 희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70억 명이 넘는 지구인 중 우리가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기적이기도 하지만, 그 기적을 뛰어넘어 서로의 노력으로 ‘지속가능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은 과학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축복의 결실이다. 서로의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비로소 결실을 보는 축복은 터지기 쉬운 풍선과도 같아서 때론 다른 관심의 크기가 애착을 집착으로, 서로를 향한 지나친 열정은 걱정이 간섭으로 되며 결핍만도 못하게 되기에 더 소중하기만 하다.

필자는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때론 이별을 두려워했다. 혹여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필연적으로도 붙잡고 싶은 사람이 생기게 된다면 애착 아닌 집착으로 관계를 구걸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는 언제나 파멸이었으며 예견된 결말이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몰랐다. 이별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마음의 크기는 시시각각 바뀌는 것인데, 애써 아닌 척 괜찮은 척 애착담요를 떠나보내기 싫었던 그때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준 선물과도 같은 ‘고독의 성찰’을 통해 관계의 비움을 다소 느끼고 있다. 애착담요를 떠나봤을 때의 상실감의 크기가 과거와 현재 같지 않은 것처럼 비록 인간관계에 있어 그 당시에는 쉽게 떠나보낼 수 없어 애걸복걸했을지라도 먼 훗날 그 기억은 그저 습작의 파편에 불과하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기억을 비로소 객관적이면서도 편파적이라도 해석할 수 있을 만큼 치유의 시간이 지나야 우리는 이별의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관계에 연연해하지 않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연을 맺는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상대방을 향한 마음의 크기는 결코 같을 수 없다. ‘마음’은 변하더라도 ‘행동’이 변하지 않음을 통해 우리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끌림에 가까웠던 ‘마음’에서 비롯된 관계를 지켜야겠다는 ‘행동’이 너와 나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너와 나의 관계에 있어 서로의 행동에 다소 큰 격차가 있다면 만남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마저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면 때론 이별을 시도하자. 아름다운 이별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별이 꼭 불행하다고만 볼 수 없다. 관심은 단순히 줄 수만 있는 것도, 받을 수만 있는 것도 아니기에 관계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바탕으로 적정한 선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오지 않는 부재중 전화를 기다리며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때론 바라지 않던 부재중 전화에 상대적인 마음의 크기를 느낀다. 부재중 전화에 연연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당신은 어쩌면 완만한 관계를 벗어나 집착과 파멸의 단계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별을 두려워하지 마라. 순간의 아픔은 쓰려 베어낸 가슴에 눈물 맺을지도 모르나 생각보다 우리에게 부재중 전화는 자주 온다.

않는 부재중 전화를 기다리며, 원치 않는 부재중 전화를 받지 않으며 관계 앞에 선택과 집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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