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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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 정관소식
  • 승인 2021.02.08 10:27
  • 조회수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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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딪히는 바람이 그리 시리지 않은 걸 보니 봄이 오나 봅니다. 얼었던 땅이 녹고, 지저귀는 새들을 보니 마음 한편은 따스해지면서 한산한 학교 운동장, 굳게 닫힌 정문을 보면 이번 봄도 어제와 같은 시린 봄일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아쉬운 끝, 기대되는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2월 졸업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 보다 축하받아야 하는 당신의 졸업마저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워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졸업의 의미를 축하하며 함께 갔던 중국집도, 운동장에서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며 함께 찍었던 사진들도 이번 졸업생들에게는 환상에 불과한 흐릿한 소망으로 남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의 졸업은 아름다우며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지적 인종주의’라는 말과 함께 사람마다 두뇌의 용량과 기능은 다른데 학업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사회차별을 받는 현실을 꾸짖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도 어쩌면 지난 교육 현장에서 끝없는 줄 세우기에 지치고 망가졌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분명 당신도 모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암기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계산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주눅 들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교육 받고 확인받으며 성실이라는 과목을 평가받지만, 지난 평가 과정에서 받았던 당신의 점수가 인생에 대한 점수는 아니라는 이야기와 함께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어쩌면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던 제가 제 앞에 놓여 있는 상황에 합리화하며 자위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빈손으로 가볍게 졸업식장을 나와도,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저는 당신이 그저 고귀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이제 고등 교육을 받으러 상급 학교로 진학할 수도 있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당신은 고대했던 대학 생활을 앞두고 성인이 되었다는 기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우리가 꿈꿔왔던 성인이라는 삶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이에 저는 당신이 희망을 품고 새로운 세상에서 비상할 것을 꿈꾸되 오늘이라는 시간을 찬란하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영위하면 좋겠습니다. 절대적 수치로 봤을 때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은 같은데, 찬란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감수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니까요. 당신이 목표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 오늘의 잠시 멈춤이 당신에게 고통이 아닌 인내의 시간이 된다면 오늘이라는 시간이 값지겠지만 그저 내일은 오늘과 다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늘마저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위 말들도 칼럼에 기대어 저 스스로 해주고 싶은 말일지 모르겠습니다. 대학 4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졸업하는 선배들의 얼굴에 빛바랜 근심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며, 불투명한 회색 미래에 잠시 멈춤을 어김없이 시연하는 저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일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평범한 한 사람으로 졸업을 앞두고 왠지 모를 씁쓸한 침을 여간 삼키고 있을 당신에게 어쩌면 규율과 절제를 배워왔던 우리의 교육 과정에서 결과와 상관없이 묵묵히 당신의 길을 걸어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으며, 함께 걸어왔던 소중한 친구들과 인도해주셨던 은사님들 그리고 당신의 가족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당신의 지난날들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도, 중학교 3학년도, 고등학교 3학년도, 대학교를 졸업하는 선배님들도 모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당신의 2월이 시립지만 않기 바라며 드리우는 달빛에 앞날의 축복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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