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제1법칙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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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제1법칙 경청
  • 정관소식
  • 승인 2020.11.0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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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터득은 말 잘하는 것보다 경청으로부터

정년퇴직 후 각종 모임에 나가보니 느끼는 공통점이 하나있다. 너나없이 예전과 달리 목소리가 커졌고, 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더욱 더 왁자지껄하다. 나름대로 자기 주관을 내세우며 열을 올린다. 흔히 이야기하는 ‘나이는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공자가 <논어>에서 나이 예순 살을 이순(耳順)이라고 한 말조차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순(耳順)은 어떤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고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자세, 즉 경청(傾聽)이 우선 되어야하는데, 그게 아닌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에는 글자마다 옛 선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경청(傾聽)의 경(傾)은 ‘기울일 경(傾)’, 청(聽)은 ‘들을 청(聽)’으로 되어 있다. 즉 경청은 “몸을 기울여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청(聽)은 어떻게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한자이다. 이를 파자(破字)해 보면 ‘귀 이(耳)자 밑에 임금 왕(王)자’가 있는데, 이것은 듣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열 십(十)자 밑에 눈 목(目)자’가 누워있는 것은 열 가지의 눈으로 보라는 뜻이며, ‘한 일(一)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있는 것은 상대방과 한 마음으로 들어주라는 의미이다. 곧 듣는다(聽)는 것은 ‘왕 같은 귀와 열 개의 눈을 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된다. 이렇게 경청의 의미를 풀이해놓고 보면, 경청의 성품으로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세종대왕이 떠오른다.

세종대왕은 즉위 후 맨 처음 한 말이 “사람을 쓰는 문제에 관해 의논하자.”였으며, 사소한 일에도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라며 묻고는 대신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었다. 그러했기에 신하들은 세종 앞에서 어떤 말이든 거침없이 할 수 있었고, 세종은 귀를 활짝 열고 누구의 말이든 귀담아 들으려 했던 경청의 달인이었다. 즉 백성들의 여론을 수렴해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펼친 군주였던 것이다. 그리고 경청의 달인 하면 세종을 보좌한 황희(黃喜)정승을 빼놓을 수 없다. 황희는 세종 때에만 18년간 영의정을 지내는 등 총 73년 동안이나 벼슬살이를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벼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청렴함과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판단력, 탁월한 일처리 능력이 큰 이유였겠지만 그는 수많은 회의에 참석하거나 주재하면서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다른 이들의 말을 두루두루 듣고 맨 나중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종합적인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군왕과 명재상이 있었다는 것은 그분들이 일찍이 경청의 중요성을 터득했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또한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도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지금의 나를 가르친 것은 내 귀였다.”는 말을 남겼다. 또 우리 속담에도 “팔십 노인도 세 살 먹은 아이한테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비록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이라도 일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소홀히 여기지 말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유대인의 정신문화의 원천으로서 높이 평가되는 <탈무드>에도 “귀는 친구를 만들고, 입은 적을 만든다.”고 역설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때론 사회적 지위나 나이 등을 이유로 오히려 윽박지르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든 혼자 살 수는 없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의견을 주고받고, 무수한 이해관계 집단과도 상호작용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관계를 원만히 해나가는 게 소통이다.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이른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결국 갈등밖에 더 일어나겠는가. 갈등은 조직의 화합을 저해하여 발전의 동력을 분산시키는 등 막대한 사회적비용을 야기한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이든 서로에 대한 신뢰가 기반이 된 소통이 중요하다. 소통의 부재는 잘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려는 데서 싹튼다. 대화의 기본은 잘 듣는 것이다. 사람 몸에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귀는 양쪽을 열고 들으라는 것이고, 하나의 입은 들은 것의 반만 말하여 말실수를 줄이라는 것이다. 말은 많을수록 실수가 잦고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쉽다. 반면 남의 이야기는 많이 들을수록 지혜가 깊어지고 신중한 판단을 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만큼 ‘말하는 것보다는 경청(傾聽)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경청이란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 먼저 자리하지 않으면 좀처럼 이행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공부가 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뜻이다. 결국 잘 듣는 방법도 터득해야 한다. 잘 듣는 것이 잘 말하는 것보다 훨씬 상대에게 감동을 준다. 경청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지혜이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경청 잘하는 사람이 되어 ‘소통의 달인’이 되지 않으시겠는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삶의 지혜가 경청임을 명심하자.

하종덕(전 부산광역시 서구부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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