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의 명암
상태바
100세 시대의 명암
  • 정관소식
  • 승인 2020.06.02 10:01
  • 조회수 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수는 모두의 소망이지만, 효율적 저출산·고령화 대책 세워야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40년 넘게 매달 모임을 가지고 있다. 코흘리개 시절 시골에서 같이 자라 타향에서 다시 만났으니 끈끈한 우정을 더 느껴 부단하게 이어오고 있다. 모임 때마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름을 부르거나 “남학생!”, “여학생!” 등으로 부르며, 마침 학창시절처럼 깔깔대며 지내곤 한다. 그러던 것이 2, 3년 전부터 호칭이 달라졌다. “지공거사”, “지공선사”, “지공여사” 등으로 부른다. 그냥 들어보면 마치 사자성어 같은 느낌이 들지만,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지공거사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 지공선사는 “지하철 공짜표를 선물로 받은 사람”, 지공여사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여성”을 이르는 은어이다. 몸과 마음은 아직도 정정한데, 무료승차가 겸연쩍은 어떤 노인이 만들어 낸 조어 같은데, 우습기도 하지만 조금은 서글프기도 한 별칭이다. 무료승차가 겸연쩍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 있었던지 무료승차한 자를 ‘꼰대’라 하지 않고 ‘거사’ 등으로 치켜세운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의 경우 60세가 되면 정년퇴직을 하고, 노인의 기준연령은 노인복지 관련 법령에 따라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노인의 지하철 무료승차는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노인에게 최소한의 이동권을 지원해주자는 노인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노인복지법 제26조(경로우대) 제1항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65세 이상의 자에 대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송시설 및 고궁·능원·박물관·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무료로 또는 그 이용요금을 할인하여 이용하게 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하철 운영이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지하철의 경우 2019년 한 해 무료수송 비율이 29.8%에 이른다. 승객 10명 중 3명이 무료승객인 셈이다. 그만큼 노인인구, 즉 장수인구가 많은 도시임을 반증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수는 인간의 꿈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오복(五福)이라 하여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오복의 첫째인 수(壽)는 장수를 의미한다. 조선시대 권세를 누리던 임금의 평균 나이가 46세인 것을 고려하면 장수가 왜 최우선의 소망인지 쉽게 수긍이 간다. 유엔은 한 나라에서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를 넘으면 ‘고령 사회’, 20%를 넘어서면 ‘초(超)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데 이어, 2017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문제는 속도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가 되는 데 불과 17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본은 24년, 미국은 73년, 프랑스는 115년이 걸린 일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우리나라는 5년 후인 2025년쯤 20%를 넘어 초(超)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임신 가능한 나이 동안 낳을 수 있는 자녀의 수)마저 2019년 하반기 기준 0.92명으로 추락하여 이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

인구에서 노인 비율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어린이의 비율이 줄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어린이가 줄어들면 학교는 사라진다. 1982년부터 2019년까지 3,784개의 초·중·고등학교가 폐교됐다. 한해 평균 105개가 사라진 셈이다. 현재 인구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연령층은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소위 ‘베이비붐 세대’이다. 이들은 현재 직장에서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다. 한해 은퇴하는 사람의 숫자가 새로 태어나는 신생아보다 많다는 것은 생산 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젊은이들의 노인부양 부담은 커진다. 생산 활동을 하면서 돈을 버는 청장년층이 감소하면 경제 성장률은 저조할 수밖에 없고, 고령인구 부양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

우리 사회가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중장년층의 공통된 구호로 ‘9988234’가 유행이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아프다가 죽는다는 뜻이다. 장수라는 말뜻에는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기능의 대부분을 유지한 채로 독립적인 생애를 꾸려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온전히 내포되어 있다. 실상은 어떤가?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령 인구의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총 의료비의 40%를 상회하고 있고, 대부분의 노인들은 생애의 마지막 11년을 병원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다. 특히 국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치매 환자는 75만 명이며, 유병률은 10.2%인 것으로 추정됐다. 65세 이상 치매환자의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2천만 원가량으로 국가 치매관리비용이 15조3천억 원에 이르러 국내총생산(GDP)의 0.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뿐이 아니다. 빈곤·질병·고독감 등 고령화가 안고 있는 문제는 수없이 많다. 과연 이러고도 장수를 축복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구가 더욱 감소한 뒤에는 그 어떤 대책을 세워도 큰 소용이 없다. 정책의 대상자가 줄어 실효성을 담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효율적인 저출산 대책과 고령사회에 대비한 국가적인 노인복지체계 정립이 시급한 과제다. 이를 게을리 한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 하종덕(전 부산광역시 서구 부구청장)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