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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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주는 교훈
  • 정관소식
  • 승인 2020.04.0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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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는 실천하되, 온정과 배려의 거리는 더 가까워져야

지난 해 연말 중국의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민생경제와 각 산업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또한 전 국민은 ‘마스크 맨’이 되어 버렸고, 우리 시민사회를 지탱하던 공동체 정신마저 붕괴되고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삼켜버렸고 이제는 세계가 초비상 사태에 놓였다.

학교와 상점은 문을 닫았고, 무급휴직 권고가 자행되고, 북적거리든 대중교통은 한산하고, 거리도 텅텅 비었다. 택시도 기다랗게 줄을 선 지 오래다. 결혼이나 해외여행 등은 줄줄이 연기 또는 취소되고, 각종 모임은 꿈도 못 꾼다. 또한 재택근무 일상화라는 미증유의 실험이 시작됐다. 이에 따라 부부가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 다툼이 잦다보니 중국에서는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든 감염증을 막아보겠다고 생명줄이 돼버린 마스크로 무장하고, 또다시 두어 장의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긴 줄을 서는 모습은 코로나19가 가져온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를 이겨내려면 평소 개인의 건강상태와 면역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기침 등 비말(飛沫)이 묻은 표면을 손으로 접촉하고 손이 입·코에 닿으면 감염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전파는 2m 이내의 밀접한 접촉에서 주로 이뤄진다.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 두기를 통해 전파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사태로 거리 두기의 중요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게 ‘사회적 거리 두기’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이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여러 마리가 온기를 나누려고 모였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의 가시가 서로를 찔러서 결국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매서운 추위는 또다시 이들을 가깝게 모이도록 만들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고슴도치는 가시가 없는 머리 쪽으로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서로간의 적정거리를 찾게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 미국 노스웨스턴대 인류학과 에드워드 홀 교수는 공간과 인간행동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타인과의 거리를 ①밀접한 거리 ②개인적 거리 ③사회적 거리 ④공적인 거리 등 4단계를 제시했다. ‘밀접한 거리’는 상대방과의 거리가 자기와 45cm이내가 되는 거리를 일컫는다. 타인의 체온이나 숨소리, 냄새까지 느껴져 타인이 이 거리를 침범하면 불쾌해지므로, 몸을 움츠리고 시선을 피하면서 이 상황을 견딘다. 이런 경험은 ‘지옥철’이나 ‘콩나물시루 버스’와 같은 도시생활에서 자주 겪는 것들이다. 다음의 ‘개인적 거리’는 45cm∼1.2m 이내의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로 신체적 지배의 한계점이다. 가족이나 친구 등이 이 영역 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낯선 사람이라면 어찌 불편하지 않겠는가.

다음의 ‘사회적 거리’는 1.2∼3.6m로 상대의 세부적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몸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거리로 보통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이 거리를 유지하게 돼 있다. 다른 사람이 있어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거리다.‘공적인 거리’는 3.6m 이상의 거리를 말하며 위협을 느낄 때 본능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거리다. 상대의 모습이 평면적으로 보이며, 대화를 위해서는 목소리와 몸짓도 커지는 게 특징이다. 강연회 등이 그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거리 두기의 중요성은 우리가 평상시 사용하는 단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간(人間)’이란 한자는 ‘사람 인(人)’에 ‘사이 간(間)’을 쓴다. 불교 용어로 중생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뜻하는 ‘세간(世間)’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세상 모두 서로가 빈틈없이 딱 붙어 있는 것이 아니고 적당한 거리, 즉 사이(間)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에게 개인의 위생에서부터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도 시사해 준다. 고슴도치들이 찾은 적정거리는 인간 사회에 비유하면,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예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간적인 거리일 뿐 마음까지 멀어져서는 안 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힘들수록 사회적 온정과 배려의 거리는 더 가까워져야 하고, 그 누구도 낙오시키지 않는 공동체와 연대감을 살려야한다. 다행히 사회 곳곳에서는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불씨를 되살려 하루 빨리 코로나19를 퇴치하고, 모두가 일상을 되찾아 이 위기를 발판으로 재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민족은 항상 위기를 기회로 바꾼 슬기로운 민족이 아니던가.

= 하종덕(전 부산광역시 서구 부구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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