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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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호칭
  • 정관소식
  • 승인 2020.03.0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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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호칭사용은 언어예절의 기본이자 원활한 소통의 밑거름

예전에 부산시청 산하 사업소의 과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같이 근무하던 30대 초반의 기혼 여직원이 “과장님! 건의 사항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이름이 있는데, 왜 미스 김! 김양! 이라고 부릅니까? 시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성 직원에게는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미스 0”, “0 양”등으로 부르던 시절이었고, 또 그렇게 불러주면 여직원들도 젊게 봐주어 좋아하는 줄 알고, 별 생각 없이 불렀는데 그게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아차! 잘못 했구나 싶어 바로 그 자리에서 사과를 하고 시정을 약속했다. 그 후로 시청과 구청의 간부로 근무하면서도 아들이나 딸보다 나이가 어린 직원일지라도 호칭을 쓸 때에는 존칭을 붙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단체, 현상 따위의 모든 것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이름을 붙인다. 사람도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기 위하여 태어나면 이름을 갖는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면 가장 좋은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고심을 한다. 특히 항렬(行列)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주변에 한자를 아는 사람이 없으면 용하다는 작명소를 찾아 비싼 비용을 주고서라도 좋은 이름을 짓는다. 자식이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 가길 소망하며 자신의 바람을 담아 이름을 짓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한 사람이 하나의 이름을 갖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자식이 태어나면 아명(兒名)을 지어주었고,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본명이나 관명(冠名)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하여, 이른바 별호 또는 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자(字)와 호(號)를 지었다. 자(字)는 주로 친구나 스승·부모가 지어 주었고, 호(號)는 주로 자신이 지었다. 친구 사이에서는 주로 자를 불렀고, 윗사람을 부를 때에는 호를 사용했다. 조선 후기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金正喜)의 호는 ‘추사’,‘완당’등을 비롯한 200여개 인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튼 정성들여 지은 이름을 제쳐두고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호칭으로 불러서야 되겠는가.

인간은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사회적 동물이라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산다. 시시때때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언어 예절은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그 언어 예절의 시작이 호칭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할 것이다. 상대를 부르는 호칭에는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때문에 올바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회 전반에 걸쳐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있어 여성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호칭이 많고, 조직 문화 속에도 권위주의가 곳곳에 배어 있어 젊거나 아래 직원을 하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 평등 의식이 높아진 현대에도 가족 내 호칭 문제는 이 땅에서 뜨거운 감자다. 결혼한 남녀의 양가 사람들에게 쓰는 말에 차별이 담겨있다. 예를 들면 남편의 집은 ‘시가’의 높인 말인 ‘시댁’으로 부르고, 부인의 집은 ‘처가’로 낮춰 부른다. 또 여성은 시부모를 자신의 부모보다 더 깍듯한 “아버님·어머님”으로 부르고, 반면 남성은 처의 부모를 남이라는 인식으로 “장인어른·장모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또 여성은 시가의 식구를 “아주버님·도련님·아가씨”등으로 부르는데, 남성은 처가 식구를 “처형·처남·처제”등으로 부른다. 왠지 여성은 시가 사람들을 존대하는 하는데 반하여 남성은 처가 사람들을 하대하는 듯하다. 이런 측면에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를 부를 때에도, 아버지 쪽에는 친할 ‘친(親)’자를 붙이고, 어머니 쪽에는 밖 ‘외(外)’자를 붙이는 것도 왜곡된 가족관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 이러고도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대를 부르는 호칭을 보면 친밀정도를 비롯한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이가 적다고 해서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은 금물이다. 직장에선 직장인으로서의 호칭이 있다. 계장·과장·부장 등 상대방의 직위가 있을 때는 ‘ㅇ계장님’, ‘ㅇ부장님’식으로 성 뒤에다 직위를 붙여 부르고, 직위가 없는 사원 간에는 선배일 경우에는 ‘ㅇ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자기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 사원인 경우에는 ‘ㅇㅇㅇ씨’라고 부르는 게 듣는 사람도 기분 좋고 부르는 사람도 예의 바르게 보인다.

만남의 출발점이 되는 호칭에서부터 불편하면 만남을 꺼리게 되고 결국 소통의 부재와 갈등을 부르기 마련이다. 가족 내 호칭이나 직장·사회생활에서의 호칭문제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이름이 존재의 의미라면, 호칭은 관계의 의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듯 내가 상대의 존재를 깨닫고 상대에게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김춘수 시인의 꽃)”가 되지 않을까.

                                                                   =하종덕(전 부산광역시 서구 부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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