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문화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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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문화의 변화
  • 정관소식
  • 승인 2020.02.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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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허식 풍조를 바로잡고 십시일반의 부조문화를 정착시켜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예식장이나 장례식장 등 경조사에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이럴 때에는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8남매의 막내인 필자는 형님이나 누님의 결혼식과 부모님의 회갑연 등을 치를 때면 친지나 이웃에서 달려와 내 일 같이 음식을 만들어 주고, 어머님도 옆집이나 친척집에 경조사가 있을 때 도와주시려 가시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그리고 직접 도와 줄 시간이 없을 때에는 미리 서로 의논하여 떡국이나 단술, 소주 등을 맡아 해주거나 물품 등으로 도와주는 상부상조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상부상조의 형태는 눈을 닦고 봐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전부 다 돈으로 부조(扶助)하기 때문이다.

부조(扶助)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전통미덕 중의 하나인 상부상조(相扶相助), 상호부조(相互扶助)에서 유래된 말로 한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 이념인 홍익인간의 뜻이 담겨있는 말이기도 하다. 즉 혼자 해내기 힘든 일이 있을 때 십시일반으로 협동해서 서로 의지하고 도와준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유사 이래로 상부상조의 정신을 제도화해 지냈는데, 이런 전통은 두레, 품앗이, 향약, 계 등으로 이어지며 한국인 특유의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왔다. 부조야말로 우리 민족 공동체 삶의 불문율이며 한민족의 뜨거운 정이 녹아있는 문화라 할 것이다.

어느 민족에게든 상부상조의 문화가 없진 않겠지만 특히 우리 민족의 서로 돕는 문화는 외국인의 눈에도 남다르게 비쳐졌다. 이웃의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우리의 상부상조 문화에 대해 청나라의 정치사상가 캉유웨이(康有爲)는 “조선인이 갖고 있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라 했고, 또 근대일본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조선인의 서로 주고받는 인심은 곧 그들의 친선과 국력이 됐다”고도 평가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과거의 품앗이 등과 같은 일손을 도와주는 일은 사라지고 현금으로 대신하고 있다. 즉 옛날에는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면 최근에는 현금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조문화의 본질이 왜곡되어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데 있다. 서로 돕기 위한 경조사비가 최근에는 직장과 관련된 사람들이나 로비 대상자를 챙기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기도 하고, 축의금이나 부의금 액수가 상대방에 대한 예우인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는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가계에 부담이 될 정도로 경조사에 대한 지출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조사비는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한 것인데, 최근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부조고지서’, ‘예우고지서’라고 불리기도 한다. 얼마 전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때 공직후보자의 두 자녀 결혼식 때 물경 3억 원의 축의금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세간의 이목을 끈 적이 있다. 그럼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산업화 이전까지 부조는 대부분 돈을 주고받기보다는 혼사나 상례가 있을 때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곡식, 술 등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형태였다. 지금처럼 봉투에 돈을 넣어 주는 형식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산업화 이후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찾아 객지로 흩어지면서 비롯되었으며 1990년대부터 보편화 된 것이다. 부조문화가 이렇게 변화된 데에는 경제의 고도성장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소득과 생활수준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남에게 과시하고픈 욕구들이 살아나면서 대규모 하객과 조문객을 초청하는 과시문화로 변질되었고,참석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체면 유지를 위해 경조사비 액수를 올리게 된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야 참다운 부조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오늘날의 부조문화는 지나치게 타산적으로 변질돼 버렸다. “준 것만큼 받아야 하고, 줬으니 받아야 한다.”거나 “받은 것만큼 줘야 하고, 받았으니 줘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뿌리깊이 각인된 것은 아닌지 서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품앗이의 전통이 그랬듯 본래 상부상조 정신이란 돕는 사람의 형편에 맞게 하는 것이 도리요, 예의였다. 일 잘하는 젊은이가 품앗이를 했는데 왜 그 쪽에서는 어린이나 부녀자가 와서 품앗이를 하느냐고 항의하거나 불평하는 일이 없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품앗이를 못해주는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품앗이 그 자체에 반대급부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젠 부조문화를 바꾸는 것을 생각해 볼 시점이다. 우선 허례허식에 찌든 경조사 풍조를 바로잡아 소요경비부터 줄여야한다. 보여주기 식의 결혼식이나‘죽은 뒤에 효도 한다’는 가식적인 장례식부터 바꿔야한다. 작지만 품위 있는 경조사를 치러야 한다. 결혼식의 경우 외국처럼 초대는 정말 친한 사람만 하고, 돈을 내기보다는 축하편지나 카드와 함께 신혼살림에 필요한 간단하고 작은 선물을 전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야 ‘부조금 수금행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배운 사람, 가진 사람, 높은 사람부터 솔선하여 건전하고 검소한 경조문화 정착에 앞장서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한다. 그래야 물품이나 노동력 등으로 십시일반(十匙一飯)하여 도움을 주었던 부조(扶助)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는 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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