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과 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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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과 웰다잉
  • 정관소식
  • 승인 2019.12.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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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면서 편안한 이별을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

2018년 5월, 지구촌 저편에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뉴스 하나가 날아들었다. 104세인 호주의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스위스에서 안락사했다는 뉴스다. 그는 불치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호주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아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를 찾아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너무 오래 산 것이 후회스럽고, 앞으로의 삶이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 안락사를 택한다고 말하며, 평소 즐겨 듣던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의 마지막 악장을 들으며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얼마 뒤 지인의 병문안을 갔을 때의 일이다. 고령에다가 중증인 환자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병들어 집에 누워 있으나 산에 누워 있으나 매한가지’라는 말이 실감 났다. 우리나라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 2월부터 시행됨에 따라 담당 의사가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자녀들이 동의하면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겠다고 했는데도 자녀들은 선뜻 동의를 못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예로부터 부모님께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 정신이 전통윤리의 핵을 이루는 사회에서, 어느 자식이 부모의 산소호흡기 제거에 동의하겠는가. 숨이 붙어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 아니겠는가. 자녀들의 심적 부담이 십분 이해가 갔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환자 본인이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해 두었더라면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에 들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회복 가능성이 없는 때 무의미한 연명 조치 등의 의료행위보다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면서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향서를 작성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생로병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인데, 이제까지 죽음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생각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죽음은 확실한 미래이고, 인위적으로 늙고 죽는 사람은 없다.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며, 또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보람 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 주듯이 값지게 쓰여진 인생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21세기 들어서자마자 우리 사회를 점령한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이라는 신조어이다.

우리나라 국민처럼 치열하고 열성적으로 살아온 국민은 없을 것이다. 선진국들이 수백 년 걸려 이룬 성장을 우리나라는 반세기 만에 이른바 ‘압축 성장’을 달성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물질적인 풍요는 이루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만족감까지 이룬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태동한 게 물질적 가치나 명예보다는 몸과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을 추구하는 새로운 생활방식이 웰빙(Well-being)이다. 그런 다음, 어떤 죽음이 건강한 죽음이고 행복한 죽음인가? 잘 죽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웰다잉(Well–dying)이다. 그러므로 웰다잉보다 선행하는 것이 웰빙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자기만 잘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지금의 주변 상황은 매우 복잡다기하다.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했다. 또 ‘어제는 부도난 수표이고, 내일은 약속어음이며, 오늘이야말로 유일한 현금이다. 현명하게 사용하라.’는 말도 있다.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고, ‘지금 이 순간’만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바로 웰빙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내세를 믿는 종교가 번성한 나라임에도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편이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삶의 끝자락에서 아등바등 매달리기보다는 마치 즐거운 나들이를 왔다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천상병 시인의 귀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이것이 생의 마지막 행복이 아닐까.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무엇보다도 일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웰빙을 추구하면서 가족은 물론 친구, 주변 사람들과도 편안한 이별을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웰다잉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종덕(전 부산광역시 서구 부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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