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 기품을 더하는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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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 기품을 더하는 '기와'
  • 정관소식
  • 승인 2019.12.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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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랑 유적 출토 귀면의
장안사 출토 통일신라시대 연꽃무늬 수막새

건물의 가장 높은 곳을 덮는 지붕은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와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바람·비·눈 등의 자연환경이 강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재료와 모양새가 다르다. 그러나 네모반듯한 아파트가 빼곡한 정관에서 오랜 세월 우리의 주변 풍광을 이루었던 세모난 지붕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기와지붕은 옛 자취가 남아있는 전통 가옥이나 사찰 등에서만 만날 수 있다.

지붕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양을 하였지만, 가장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된 재료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짚’이나 ‘새’로 엮은 이엉이었다. 그러나 이엉은 세월이 흐르면 쉽게 썩어버려, 매번 갈아줘야 하는 불편이 따르고, 건물의 위용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재료였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면서 등장한 것이 기와이다. 기와는 점토와 틀을 이용하여 일정한 크기로 만들고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 단단하고, 녹유(綠油) 등의 유약을 발라 건물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서라벌에는 부자들이 살아서 초가가 한 채도 없다.”는 기록이 전하며. 통일신라시대에는 골품제에 따라 가옥의 규모, 지붕의 구조와 기와의 종류, 실내장식 등을 차이를 둔 것으로 보아 기와지붕은 권위와 부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정관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가동마을 유적에서는 기와편이 하나도 출토되지 않아 이엉을 얹은 지붕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 기장 곳곳에서 기와가 확인되어 이때부터 기와 건물이 널리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무와 13년(673) 원효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장안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수키와와 수막새, 지진구(地鎭具-건물을 지을 때 땅속 나쁜 기운을 진압하기 위해 넣는 물건)가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에 이곳에 사찰이 창건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임랑에서도 길이 9m, 너비 5m가량의 통일신라시대 건물지에서 수키와와 함께 수막새, 귀면와도 출토되어 특수한 목적의 건물이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철마면 고촌리, 장안읍 좌동리, 기장 고읍성지에서도 통일신라시대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고촌리 유적과 임랑리 유적에서는 기와를 구웠던 가마터도 함께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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