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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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 정관소식
  • 승인 2019.12.2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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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이 내리는 초여름 비는 우리네 갈 길을 머뭇거리게 했다. 분주하게 서로 전화를 돌리다가 내린 결론은 ‘그냥 가자’였다.

바짓가랑이에 흙탕물을 튀기면서 우산을 쓰고 비고인 자갈길과 흙길을 터벅거리면서 걸었던 그 날은, 먼 산의 안개가 유난히 자욱하고 잎사귀에 머물러 있던 물방울들이 유독 영롱하게 반짝거려 시종 우리의 찬탄을 자아내었다.

지난 겨울에 콜록거리면서 마스크를 두 개나 겹쳐 끼고 걸었던 그 길이 왠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하루였다.

철쭉, 진달래, 별초롱, 인동초, 산수유, 때죽나무, 가죽나무, 얼개나무, 굴참나무....... 다양한 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들 사이에서 유독 가는 발길마다 눈에 자주 띄는 꽃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 작은 구절초 같기도 한 그 꽃을 옆 친구는 개망초라고 일러주었다.

세 시간 남짓 걸었던 산책길에서 개망초는 다른 꽃들과는 달리 군데군데 눈에 띄게 많이 피어 있었다. 개망초는 그곳의 다른 꽃들처럼 일부러 군락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데도 끝없이 길가에 널어져 너불거리고 있었다. 옆의 친구는 개망초를 잘 아는 듯했다. 개망초는 모양새가 특별히 사람들 눈을 끌 만큼 아름답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이한 약효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느 곳에서나 두서없이 자라나서 자리만 차지하는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꽃이라는 것이다.

나는, 꽃들의 세상도 사람들 세상이나 마찬가지로 태어나면서부터 인물이 반듯한 것들은 ‘산수유’니 ‘별초롱’이니 근사한 품명을 달고 대접을 받는데 이 꽃은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조차 ‘개망초’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인간들처럼 돈으로 얼굴을 바꿔버리지도 못하는 그 태생적 한계가 참 가엾어져 개망초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날의 산책로는 일품이었고, 우리는 후들거리는 다리의 힘을 생생한 소등심살로 보충하고 잔잔하게 내리는 빗속의 시골 정취를 만끽하며 하산하였다.

그다음 다음 날, 피곤이 가시지 않은 몸으로 친구의 등쌀에 밀려 장산으로 가벼운 등산을 하게 되었다.

하산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아직까지도 보송보송한 여고생의 정취가 남아있는 친구의 간청으로 토끼풀 속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는다고 풀밭을 더듬거렸다. 그러면서 문득 앞이 환해진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넓은 풀밭에 개망초 꽃들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참 아름다웠다. 이틀 전 산길에 군데군데 피어나 있던 그 개망초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눈과 마음은 왜 그리 변덕스러운지, 이틀 전의 그 개망초와 지금의 개망초는 그저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인데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나만 그야말로 지조 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는 우리가 더듬고 있는 토끼풀에 비해서 개망초 꽃은 참 우아한 것 아니냐면서 환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개망초 꽃밭에 다가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순간 ‘그래, 토끼풀에 비해서는 개망초가 아름다운데도 나는 그저 산수유 꽃보다 못한 개망초만 생각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개망초 꽃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으로 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산을 내려올 때의 나의 화두는 개망초 꽃이었다.

내가 토끼풀을 보지 않았더라면 개망초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장산의 개망초가 홀로 떨어져 기장 산길 가에 아무렇게나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면 나는 사진을 찍기는커녕 일말의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 덕분에 그렇게 탐스럽게 군락을 이루어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모습의 개망초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휴게소에서 생수를 마시면서 개망초는 다시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까지 꽃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도 못하면서 몇 가지 잔 지식만 가지고 어느 꽃을 함부로 평하고, 그 꽃이 언제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지도 모르면서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모습대로만 그 꽃을 폄하해 버린 일은 없었을까?

평범하다고, 인물이 모자란다고 내 눈에 보이는 대로만 누군가를 자리매김해버려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자연스럽게 화사한 빛을 발할 수 있는 뿌리를 아예 내리지 못하게 한 적은 없었을까?

그날의 개망초는 내 스승이었다.

허승희(부산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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