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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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 성범죄
  • 정관소식
  • 승인 2019.12.26 17:56
  • 조회수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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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명 연예인이 관계된 강남구 소재의 클럽이 ‘핫’하다. 좋은 의미로 유명해지면 다행이지만, 불행히도 단순 폭행에서 시작된 논란이 경찰관의 폭행, CCTV 비공개 문제, 경찰과 업소 간의 유착 문제를 거쳐 결국 마약류 투약과 성범죄 논의로까지 확대되었고, 이 클럽은 영업을 중단했다. 이 클럽의 ‘사내이사’였던 유명 연예인은 뒤늦게 자신이 실제로는 클럽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주장하고 있으나,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금 가장 큰 논란은 마약 문제이다. 단순 투약이 아니라 마약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질렀고, 이를 영업에 활용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단순 스캔들을 넘어 심각한 범죄가 된다. 이 경우 상당한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됨은 물론이다. 이 클럽에서 성범죄에 사용되었다고 의심받는 마약은 ‘GHB(Gamma-Hydroxybutanoic acid)’라는 약물로 술에 탈 경우 색깔도, 냄새도, 맛도 나지 않는다.

이 약물의 사용은 물론 그 소지도 엄격히 제한되는데, 마약류 관리법 제2조 제3호는 “향정신성의약품”이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으로서 이를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시행령은 별표 6은 GHB가 향정신성의약품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약물의 경우 중독성이 강하지는 않으므로 다른 마약에 비하여 처벌 수위가 높지는 않은데, 같은 법 제61조 제1항 제5호는 GHB 등을 매매, 매매의 알선, 수수, 소지, 소유, 사용, 관리, 조제, 투약, 제공한 자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기재한 처방전을 발급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GHB는 스스로 투약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교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비되며, 특히 무색, 무취, 무미라는 특성 때문에 성범죄 등에 악용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과거 성범죄에서 자주 사용되는 약물은 졸피뎀 등 수면유도제였는데, 이에 비해 GHB는 중추신경을 억제하여 각성효과를 일으켜 정신을 잃게 만드는 것으로 작용 형태가 약간 다르다.

하지만 작용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러한 약물이 실제 성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상대방 모르게 마약을 교부하여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이는 형법상 강간죄가 된다.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심각한 범죄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약물을 주어 이미 정신을 잃은 자를 간음한 경우 준강간죄로 처벌받는데, 이 경우에도 형량은 강간죄와 동일하다. 살인죄가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것을 보면 강간죄는 매우 무겁게 처벌되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한 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 체감하는 처벌 수위가 높은지는 다소 의문이다. 성범죄는 면식범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피해자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피고인을 강하게 처벌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음에도 합의에 이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 가해자의 합의 시도로 인한 2차 피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사건을 빨리 잊어버리고자 하는 심리도 피해자가 합의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최근 이러한 문제가 지적되어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가 도입되었고, 강간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처벌되도록 변경되었지만, 여전히 처벌 수위는 일반인의 시선에서 볼 때 가볍기 그지없다. 실제로 필자가 수행한 성범죄 사건의 경우도 대부분 합의를 거쳐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 구속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많지 않았으며, 구속되더라도 최저형량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범죄 피해를 입은 것에 자책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경찰서 혹은 병원으로 향해야 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GHB와 같은 약물의 경우 빠르면 6시간 안에도 체내에서 배출되어 약물 검사가 쉽지 않다. 또한, 통상 범죄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인 CCTV의 보존 기간도 길어야 3달 정도로 길지 않기 때문에, 빠른 증거 확보가 필요하다. 성범죄 사건 피해자의 경우 주요 대학병원에 설치된 해바라기 센터에서 약물 검출 여부 검사를 포함한 성범죄와 관련된 주요 검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성범죄는 남녀 문제 혹은 수치스러운 일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신고를 주저하고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히 이는 범죄이고,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다. 작년 한 해 미투 사건이 우리 사회의 성범죄 감수성을 끌어올렸다면, 이번 사건이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사건의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선동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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