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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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예찬
  • 정관소식
  • 승인 2019.12.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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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걷기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확실한 길

조선시대의 명의(名醫) 허준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는 행보(行補)가 낫다”고 했다. 즉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게 좋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좋다는 뜻이다. 영국 속담에는 “우유 먹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도 동의보감의 “식보보다는 행보가 낫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그리고 스위스 속담에도 “걸으면 병이 낫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또한 걷기의 효과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처럼 걷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우리 인간의 건강에 가장 좋은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에 걷는 일 만큼 쉬우면서도 의미심장한 행위가 있을까. 걷는다는 것은 아주 평범한 일상행위 가운데 하나이지만,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걷는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익히고,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무수히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마침내 혼자 걸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이러한 걷기 과정을 통해 협동심과 사랑을 배우고, 목표의식과 도전의식을 함양하며, 나아가 독립의식을 키우면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직립보행, 즉 두 발로 서서 걷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직립보행은 바로 인간의 역사요, 인간이 최초로 발휘한 위대한 능력이라고 했으리라.

사람이 늙어가면서 가장 걱정해야 하는 것은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것도,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진 두 다리로 걸어 다니지 못하는 것일 거다. 걸어 다니지 못하는 순간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좋아하는 여행이나 음식점을 마음대로 못 가는 것은 약과다. 화장실에 가는 것 등 일상생활의 작은 움직임조차도 큰일이 된다. 이렇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삶의 질이 낮아지며,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무너져 인생 전체가 망가질 우려가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사고나 질병이 아닌 단순한 걷기운동 부족이라면, 두 다리를 놀린 자신을 얼마나 원망할 것인가.

다리에는 온몸에 있는 신경과 혈관의 절반이 모여 있으며, 온몸에 있는 혈액의 절반이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두 다리가 튼튼하면 경락이 잘 통하여 뇌와 심장, 소화계통 등을 비롯하여 각 기관에 기와 혈이 잘 통한다. 또한 사람의 전체 골격과 근육의 절반이 두 다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큰 근육과 관절, 뼈도 다리에 모여 있다. 그래서 일생동안 소모하는 에너지의 70%를 두 다리에서 소모한다. 젊은 사람의 대퇴골은 승용차 한 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무릎 뼈는 자기 몸무게의 9배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어서 고층 건물의 기둥이나 벽체와 비견된다. 하지만 아무리 튼튼한 인체라도 쓰면 쓸수록 발달하고, 쓰지 않으면 그만큼 퇴화한다. 다리운동, 즉 걷기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걷기운동은 고혈압과 동맥경화, 콜레스테롤의 상승을 억제하여 뇌혈관질환의 발생률을 낮춰 준다. 1주일에 20시간 정도를 걸은 사람의 경우 뇌졸중 발생 가능성을 40% 정도 감소시킨다고 한다. 또한 실제로 하루 30분 걷기 운동이 당뇨병을 예방해주며 당뇨병이 있는 경우 약물 처방보다 2배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걷기운동은 체지방 감소에 효과적인 운동이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걷기, 뛰기, 자전거 타기를 각각 1회 30분, 주 3회씩 20주간 실시한 뒤 체지방 감소율을 조사한 결과 걷기가 13.4%의 체지방을 감소시킨 반면 뛰기는 6%, 자전거 타기는 5.7%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루 15분 이상 햇볕만 쬐어도 체내 칼슘 흡수율을 높여 뼈를 튼튼하게 해주고 골다공증이나 골절과 같은 뼈 질환의 위험을 낮춰주는 비타민D의 하루 권장량을 채울 수 있다고 한다.

걷기운동의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은 걸어 다닐 때 머릿속이 가장 맑다고 한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무엇보다 꾸준히 걸으면 신경 생성과 뇌 성장을 촉진하는 신경영양 분자가 분비되어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노화에 따른 인지능력 저하를 막아 치매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현대인은 걷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바쁘다는 구실로 자동차를 비롯한 문명의 이기(利器)들에게만 의존하다 보니 두 발로 걷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오늘날에는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가면서도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태반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바야흐로 백세시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걷기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확실한 길이다. 우리의 발에는 뿌리가 없다. 발은 움직이라고 생긴 것이다. 걷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며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 데다가 매우 안전한 운동이다. 하루에 10,000보 등 걸음 수를 정해 놓고 걸어도 좋지만, 걸은 후 살짝 땀이 날 정도면 족하다.

이제 화창한 봄이다. 여기저기서 눈을 유혹하는 꽃들이 만발할 것이다. 운동화를 동여매고 그들 속으로 걸으러 나가지 않겠는가. 꽃들이 내뿜는 향기를 맡으며 사뿐사뿐 걷다 보면 기분은 상쾌해질 것이고, 자연히 건강도 좋아질 것이다.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종덕(전 부산광역시 서구 부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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